문화 교육 인터뷰

[문화 교육 인터뷰] 라디오 스타를 만나다_DJ 박원웅

interview intro
청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인터뷰를 통해 ‘문화로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문화로 더 많은 이들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 문화 교육 인터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이어주는 ‘메신저(messenger)’라고 할까요?. 라디오의 청취 대상은 불특정 다수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겐 유일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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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박원웅
60년대 AM <한밤의 음악 편지>프로듀서, <뮤직 다이알> DJ 및 프로듀서
70년대 FM <밤의 디스크 쇼> <박원웅과 함께>
90년대 FM <골든 디스크> DJ 및 프로듀서
90년대 말 MBC 아카데미 상무이사 (2000년 정년퇴직)
성결 대학교 국문과 겸임 교수(1997년~2001년)
TBS 교통방송 ‘뮤직 투 뮤직’ 방송(2002~2004년)
 
 
 
 
 
 

6070 국민DJ
1967년에 MBC 문화방송 음악 프로듀서로 입사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뮤직 다이알>을 만들 당시, DJ가 나오지 못하는 사정이 생겨 제가 방송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때를 계기로 정식DJ가 되었지요. 이로서 프로듀서, 엔지니어, 작가, DJ까지 1인 4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엔 방송국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청춘 프로그램의 대표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DJ)’로 활약하다, <밤의 디스크쇼>라는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밤의 디스크쇼>는 훗날 제 이름을 내건 <박원웅과 함께>로 바뀌게 되고, 약 18년간 5,400회 정도 방송했습니다. 이후 를 맡았고, 가수 김창환 씨가 제 후임으로 DJ바통을 이어받았지요. 라디오에 광고가 가장 많이 붙고, DJ들이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았던 시절로 그 때를 회상합니다. 1993년 <골든디스크>를 마지막으로 MBC에서 22년 간의 DJ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그 시절
1960~7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가난했습니다. 60년대에는 ‘보릿고개’가 있었고, 70년대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54달러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비로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외침이 사람들 사이에 일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온 국민이 팔을 걷어 부치던 의지와 열정으로 가득한 때였지요. 저는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 날 대한민국이 ‘무역 1조 달러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사는 일이 녹녹치 않았지만, 좋은 음악들은 참 많았습니다. 팝에서는 ‘탐 존스’,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같은 가수들이 등장했고, 가요에는 ‘이선희’, ‘윤영주’, ‘양희은’ 같은 가수들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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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전성시대
FM시대가 열리며 라디오는 새 국면을 맞았습니다. AM과는 차원이 다른 스테레오의 고음질을 들을 수 있게 되자, FM으로 많은 청취자들이 몰렸습니다. 그땐 선곡이 DJ의 경쟁력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방송에서 좋은 곡이 나온다 하면, 청취자들이 그쪽으로 모두 몰렸으니까요. 방송국에 마땅한 디스크가 없으면 사비를 털어 구입하기도 하고, 방송국 밖 음악감상실에서 빌려와서라도 좋은 곡을 틀기 위해 애썼습니다. 청취자들이 보내는 엽서와 거기에 적힌 사연들도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예쁜 엽서 전시회’입니다. 일년 동안 도착한 엽서들을 모아 연말에 공개 전시를 한 것이죠. DJ를 뽑는 콘테스트도 열었습니다. 거기서 오늘 날 ‘아트록의 대부’라 불리는 성시완 씨가 배출되었고요.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이었던 <강변가요제>도 저의 기획입니다. 가수 이선희와 그녀의 데뷔곡 ‘J에게’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었던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영원한 라디오 스타
TV가 나오기 전까지 라디오는 서민들의 절대적인 매체였습니다. 모두 라디오 하나씩을 곁에 두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장사를 했지요. 그 시절 라디오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이어주는 ‘메신저(messenger)’라고 할까요?. 라디오의 청취 대상은 불특정 다수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겐 유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다정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했지요. 이렇게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방송을 하는 동안 제대로 한 번 쉬어본 적 기억이 없습니다. 살아오며 온갖 일을 다해봤는데, 젊은 시절 몸담았던 음악만큼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뮤직 카페를 열어 앞으로도 음악속에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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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박원웅의 <문화교육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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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대중문화 탄생기를 조명하는 전시회입니다.
보통사람들의 가정집에서부터 골목, 학교, 시내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시간이 유물과 영상으로 생생하게 재현되어 누구나 그 시대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추억의 엽서와 LP판들이 전시되고, 음악 다방에서 라디오와 함께 전설이 된 유명 DJ들의 공연을 매일 즐길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근•현대 생활 유물들로 재현해 낸 그때 그 시절 그 장소에서, 미처 몰랐던 빛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월 28일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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