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육 이야기

청심

꿈이 있어 행복한 그녀, 대한민국 대표 꿈쟁이 – 김수영 작가

꿈쟁이 김수영과 함께 한 <청심 목요아카데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작가, 블로거, 마케터, 영화배우, 통역가, 요가강사… 김수영 씨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너무 많지만, 아무래도 ‘꿈쟁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는 게 가장 어울릴 것 같습니다. ‘꿈쟁이’ 김수영 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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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중퇴, 일진 등 김수영 씨의 학창시절 단면들이다. 누구나 ‘문제아’라고 손가락질 하던 그녀는 지금 어떨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 대표 꿈쟁이’를 자처하며 이곳저곳에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그녀의 긍정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청심 목요아카데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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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김수영


Q 김수영 씨의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원래 넉넉한 형편이 아니기도 했지만, 특히 초등학교 때 집이 매우 어려워져서 야반도주를 하는가 하면, 비가 새는 마을회관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2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방과 후에는 아버지가 미워서 집에 가는 것이 정말 싫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중학교 때는 퇴학을 당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라고 할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누비고 싸움도 하고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참 많이도 저질렀습니다.


Q 그런 과거를 딛고 실업계고등학교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고 명문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중학교 퇴학 이후 늦었지만,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후회를 했죠.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검정고시를 통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자’라는 꿈을 가지게 됐죠. 하지만 학교는 물론 집에서 공부를 반대해서 남들이 버린 문제집을 주워서 공부했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한 손에 고구마를 들고 먹으며 책을 팠습니다. 주위에서 ‘너는 안 된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두고 보자’라고 곱씹으며 이를 악물었죠. 결국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뤄낸 첫 번째 기적이었죠.


Q 스스로를 ‘대한민국 대표 꿈쟁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꿈을 이루며 살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호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25살에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초기였고 지금은 완치됐지만,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여겨졌죠.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것을 쭉 써보기로 했어요. 몇날 며칠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니, 73가지의 꿈이 적힌 ‘버킷 리스트’가 완성되더군요. 꿈이 정해지니 행동은 즉각적이었어요. 아마 제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봐요.
먼저 첫 번째 꿈인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를 이루기 위해 영국 기업 100여 곳으로 입사지원서를 보냈습니다. 그 중 4곳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고, 이후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몇 년 후 제게 맞는 직장을 찾아 세계 매출 1위 기업(2008년 포춘지 선정)인 ‘로열더치쉘’ 본사로 옮기게 됐죠. 그곳에서 열심히 제 능력을 보여주며 일을 했고, 매출 800만 달러를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가 됐습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라는 첫 번째 제 꿈을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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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김수영



Q 작가·마케터·블로거·통역가·국내 최초 발리우드 배우·요가강사 등 직업이 참 많습니다.
모두 제가 꿈을 이루면서 얻게 된 소중한 선물들입니다. 예컨대 인도영화를 일컫는 ‘발리우드’에는 그간 우리나라 배우들이 출연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일반인인 제가 ‘발리우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위해 무작정 인도로 갔죠.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사실 제 열정을 높이 산 영화 제작자 덕분에, 없는 배역을 만들어서 출연한 거죠. 작은 역이었지만 제법 대사도 있었고 출연 장면도 꽤 있었답니다. 결국 제가 ‘대한민국 최초 발리우드 배우’가 됐다고 할까요?(웃음)
그 외에도 평생 꿈인 작가로서 현재 세 번째 책 발행을 앞두고 있고, 블로그를 통해서도 매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요가와 통역도 꿈을 이루면서 얻게 된 제 소중한 일상의 한 부분입니다.


Q 버킷 리스트가 처음 보다 10개가 더해진 83개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꿈의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하나씩 꿈을 이루며 그 위에 또 다른 꿈을 덧씌우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늘어나게 됐네요. 꿈쟁이로 살기 시작한 후 7년 동안 7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지냈습니다. 얼마 전 곰곰이 따져보니, 제가 세운 꿈 중 47개의 목표를 이뤘거나 이루고 있는 중이더군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니, 그냥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해둘게요.


Q 많은 이들이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를 보세요. 저 같은 사람도 해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믿어야 해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일단 저지르세요. 다만 심장이 반응하는, 나만의 꿈을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Q 꿈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꿈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됩니다. 저 역시 그렇죠. 그저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저처럼 꿈을 이루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루에도 수 백 통의 메일을 받고 문자 메시지를 받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저의 꿈을 응원해주고 저를 특별한 사람으로 바라봐 줍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자신의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지향점이 생기는 거죠.


Q 그렇게 쉼 없이, 늘 새로운 꿈을 찾아 달리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 꿈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저만이 할 수 있는 꿈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그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어요.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나 킬리만자로 오르기 등은 많은 사람들이 먼저 경험해 본 것이에요. 하지만 저는 당시 제 꿈에 대해 조언을 해 줄 멘토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킬리만자로에 오를 때 고산병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무작정 해외로 건너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죠. 만약 제게 멘토가 있었다면 그 꿈을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이룰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더군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내가 멘토가 돼주겠다고요. 제가 했던 시행착오들을 반복하지 않게 말이죠. 그러다 보니 이제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멘토가 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이 됐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조금 더 달린다 해서 숨이 차지 않아요. 그저 즐거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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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김수영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중·장기적으로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을 돌며 다큐멘터리 <꿈의 파노라마 2탄>을 제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당장 다음 달부터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할 거고요. 참, 오는 7월 말에는 제 첫 공연을 열 예정이에요. 부족하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그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나눠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면 너무 진부한 대답일까요?(웃음)


Q 청심인들에게 한마디
꿈은 미래의 선택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걸어가는 현재가 과거 선택에 이은 미래인 것처럼, 현재 선택한 꿈은 자신의 미래를 정하는 갈림길의 장소입니다. 신중하세요. 그리고 망설이지 마세요. 꿈을 이루기 위한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의 몫입니다. 꿈꾸지 않는 자는 투정할 자격이 없습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고 미래에 환히 웃을 수 있는 여러분만의 꿈을 가지세요. 바로 여러분이 대한민국 ‘꿈쟁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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