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육 인터뷰

청심

[문화 교육 인터뷰]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꿈과 현실을 연결하는 길-박진희 출판기획자, 작가

interview intro
청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인터뷰를 통해 ‘문화로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문화로 더 많은 이들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 문화 교육 인터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언젠가 꿈이라는 이상이 현실을 만나게 되는 우연 같은 기적이 벌어질 거예요. 문화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매개체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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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_출판기획자, 작가
1980년생. 계명대학교 문예창작 전공.
월간 <사과나무> 기자로 활동하다 남미 여행을 다녀온 후 우연히 출판사에 취직.
2년 동안 열심히 일 하다 아프리카로 다시 여행을 떠났고 돌아와 출판기획자로 4년 동안 일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꿨으나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 양다리를 반반씩 걸쳐놓은 상태라 아직까지 자신의 책을 내지 못한 채 매달 한 권씩 타인의 책을 기획•편집하고 있다.
2013년 9월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로 여행을 떠났고 현재 ‘아프리카 여행기’ 탈고를 마침, 돌아와 곧바로 출간 예정.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늘 고민하면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그 문화를 통해 이뤄지기를 소망.
 
 

직장 생활을 하는 보통의 존재가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유년시절은 문화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어요. 당시 누구나 갖고 있던 《빨강머리》, 《작은 아씨들》과 같은 세계명작을 좋아해서 탐독했던 것이 전부였어요. 문예창작과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친구들과 늘 책과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서로가 좋아하는 영화와 만화책 제목을 공유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쪽에 재능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을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으로 바꿔치기하면서 내가 그것에도 관심이 있단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죠. 문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서로 공유되는 순간 큰 힘을 발휘해요. 누군가에게는 꿈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죠.

 

영화의 한 장면이 여행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꽃 화花, 모양 양樣, 해 연年, 빛날 화華.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고 첫 여행을 결심하게 됐어요. 마지막에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어떤 구멍에 화양연화이자 곧 자신의 비밀을 묻고 돌아오는 장면이 인상 깊어서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여행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가 테이블에 지도를 펼쳐놓고 사인펜으로 루트를 쭉 긋는 장면에서 시작되었고요. 일단 여행의 시초는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나만의 여행을 위해서 나만의 해석을 해야 했어요. 첫 여행지 앙코르와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한국으로 나와 같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단점들을 묻고 왔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싫고 좋음에 정직하지 못했던 우유부단함은 끝끝내 나를 따라왔죠. 지금은 그 단점과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201309_01<체 게바라의 모자를 쓰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처럼>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말처럼 우연과도 같은 기적을 경험하셨고요?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여행 후에 바로 취직을 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지만 참고 했어요. 내 조건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틀 안에서 이력서를 냈고 떨어지면 당연한 결과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 잡지사 <사과나무>에서 일하는 친구가 두 달의 아르바이트를 하러 서울에 오지 않겠냐고 물었죠. 선배 기자가 출산 휴가를 간 자리였어요. 당시 대구에 있었는데 부모님께는 취직했다고 거짓말하고 한 손엔 노트북과 한 손엔 고미숙 선생님의 책 《열하일기》를 들고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렇게 두 달이 끝나갈 무렵 그 선배 기자가 몸이 안 좋으니 한 달을 더 일 해주길 부탁했고 그 한 달이 끝나갈 무렵 함께 일 하던 친구가 캐나다로 연수를 가는 바람에 3개월의 인턴을 끝내고 정식 기자가 되었죠. 이것이 첫 번째 우연이고, 그 우연이 기적이라고 전 믿어요.

 

월간 <사과나무>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인생의 재산이자 힘이라고 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과나무>에서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일을 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전국각지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취재를 했던 그 순간들이 나의 30대를 만들어준 토양이에요. 김용주 선교사님, 예순이 넘어 첫 여행을 시작한 여행작가 황안나 할머니,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천문대를 세우신 이세영 천문대장님 등 멋진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내가 살고 싶은 40대, 50대, 60대 삶의 표본을 보았어요. 문화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매개체이지만 그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니, 사람을 통해 문화를 배운다고도 할 수 있지요.

 

출판사에 발을 딛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과나무>에서 일 할 때 CBS라디오에서 1년 동안 리포터로 활동하고 마련한 경비로 1년 후 40여일의 남미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의 이야기로 책을 내려고 출판사에 기획서를 돌렸는데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 하면서 책도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죠. 첫 번째 맡게 된 책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표범》인데 정말 좋아하던 작가의 책이라 감격스러웠죠. 디자이너와 책을 어떻게 만들지 소통하면서 나와 잘 맞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독자들은 누가 책을 만들었는지 관심이 없으니 섭섭할 때가 있지만 매번 좋은 책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불쑥불쑥 하는 일이 힘겨워질 때마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라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나요. 그곳에서 2년쯤 일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사표를 내고 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 또 기막힌 우연이 발생했죠.

 

어떤 우연인가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같은 날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소식을 들은 거예요. <사과나무>에서 인터뷰했던 선교사님도 마침 서울에 있으셔서 다 함께 만났어요. <사과나무> 마지막 기사에 ‘내가 다시 김용주 선교사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곳은 한국이 아닌 검은 땅 탄자니아였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그게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친구, 음악을 하는 언니와 함께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 세운 고아들을 위한 학교로 가기로 약속했죠. 그 모든 일이 하루에 벌어졌어요.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우연’이 아니겠냐며 감탄했어요.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 그 일이 이뤄질 거란 믿음이 여전히 내 마음을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201309_02<1. 마추픽추, 그 길 위에서 2. 온 세상이 하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3. 남아메리카 여행 사진>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다시 직장 생활을 하셨죠?
그리고 다음 여행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지탱하신다고 들었어요.
4년간의 직장생활을 잠시 쉬고 네 번째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9월에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떠나요. 책 만드는 일은 여전히 보람 있지만,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은 한국 시장에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다른 책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만들어내는 것에 부질없음을 느꼈죠. 그에 비해 아프리카는 자체적으로 책 만드는 사람이 없고 책 한 권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돌려보는 경우가 많아요. 뭔가를 만든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서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에 출판사를 만들고 싶지만 인쇄 기술이나 디자인을 할 능력이 없어서 그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어요. 그러던 중에 회사를 그만둬야지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회사에서는 사표를 받아들이는 대신 3개월의 휴가를 주었죠. 해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재충전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문득 산티아고가 생각났어요. 890킬로미터의 길 위에서 온전히 걷고 생각하는 일만 할 수 있을 테니 내 삶을 재정비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현실에 발 딛고 있으려면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지금까지 잘 살았나,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고민은 언제나 따라올 테니 가끔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해요.
201309_03<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토요일마다 북한산을 등산했던 모습>
201309_04<산티아고를 다녀온 선배가 선물한 것으로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말라고 그 길 위에 표시해둔 조가비>

 

작가라는 꿈을 마음에 품는 순간 언제나 일을 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셨다고요?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삶을 조율하는지 궁금해요.

대학생이든 누구든 다 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꿈이 잘 이뤄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갇히면 사람들 열에 아홉은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공부밖에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또 그걸 어디에 써먹는 게 아니라 계속 공부만 해요.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전수할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프리카에서 그림 그리는 친구와 음악 하는 친구가 그곳 아이들에게 난타와 음악을 가르쳤던 것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언젠가 꿈이라는 이상이 현실을 만나게 되는 우연 같은 기적이 벌어질 거예요. 문화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매개체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 나도 그 매개체가 되고 싶어서 내 재능을 가지고 즐겁게 잘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면 내 첫 번째 책 ‘아프리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거예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져 꿈을 재정비하게 하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꿈을 찾길 바라요.

201309_06<여행을 하며 손끝에 닿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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