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육 인터뷰

[문화 교육 인터뷰]“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위대한 유산’, 이젠 살아가는 이유가 됐어요.”-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interview intro
청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인터뷰를 통해 ‘문화로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문화로 더 많은 이들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 문화 교육 인터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이와 상황에 맞게 더 좋은 책을 만들지, 더 좋은 문화를 접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한 가정에는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아이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묵점자 혼용책’이에요. 눈이 보이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서로 만나는 접점이 되어준 거죠.”


profile
 
 
 
 
 
 
 

육근해_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1996년 사재를 털어 한국점자도서관을 세운 고(故) 육병일 관장의 딸로서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음.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아버지의 일을 보고 배움으로 ‘조기 교육’(?)을 받은 셈이다. 2006년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만들기 위해 직접 ‘도서출판 점자’를 설립, 이후 시각장애뿐 아니라 독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책들을 날마다 새롭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눈먼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고 들었어요.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어느 두메산골로 길을 떠나곤 했어요. 버스나 택시를 타려고 손을 흔들면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운이 좋아 택시를 타도 그 냉랭함은 여전했어요. 그땐 지금보다 더 엄격한 차별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목적지까지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우린 어떻게든 그들을 만나러 갔어요. 아버지처럼 눈먼 사람들, 시각장애인들의 집이요.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를 맞이하는 그 분들의 책장에는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밤늦도록 만든 점자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어요. 나는 그제야 알게 됐죠. 아버지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왜 그토록 아버지를 반겼는지를요. 어린 마음에 나는 아버지가 세상 최고의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거 같아요. 선생님에게 아버지란 어떤 의미인가요?
삶의 멘토에 대해 물으면 아버지 이야기를 해요.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않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사셨던 분이셨죠. 시각장애인으로서 활동이 어렵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과 교제하고 나누면서 더 폭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또 아버지는 시각장애인도 문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하시며, ‘동심’이라는 것을 꾸려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셨어요. 또 시각장애인이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라이온스’라는 클럽도 만드셨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제가 그 점을 닮았어요.
 

_MG_2568

 

부모님의 교육도 남달랐을 거 같은데요, 5남매 중에서 가업을 이을 정도로 아버지를 특별히 따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이 특별히 교육하신 건 없어요. 그저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과 지팡이가 되어주시는 모습이 산교육이던 것 같아요. 다른 집과 다른 점이 하나있긴 해요. 2층 부잣집 딸일 때도, 단칸방에 온 가족이 포개어 자야 할 때에도 학교 다녀오면 책 만드는 일이 숙제보다 우선이었다는 거예요. 오빠는 재판을 찍고 언니와 저는 인쇄를 하고 엄마는 책을 꿰맸죠. 고단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1년에 두 번, 시각장애인 가족들과 소풍을 가는데 초등학생 때는 학교도 빠지고 함께 갔었어요.
아버지가 한국점자도서관을 지으셨을 때, 전 초등학교 2학년이었어요. ‘한국점자도서관장 육병희’라는 명패가 대기업 회장의 명패보다 더 크게 느껴졌죠.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사회적인 차별이 있더라도 아는 것이 있고 능력을 갖고 있다면 사람답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누구나 교육의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도서관’이라고 믿으셨고요.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으셨고 지금은 점자 출판까지 하시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92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일을 도왔고 9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어받았어요. 그때부터는 ‘이 길이 내 길이다’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해외에 눈을 돌렸죠.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먼 나라를 다니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 문화를 연구했어요. 그러면서 시각장애가 가장 중증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 책을 읽지 못하는 다양한 장애를 앓고 있는 분들에게도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는 이미 ‘시각 장애’를 넘어 ‘독서 장애’로 출판의 폭을 넓혔더라고요. 여러 정책을 배우고 연구해 박사 논문도 쓰고, 2000년부터 독서 장애-청각장애, 지적장애, 난독증-을 가진 분들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을 제공했어요. 또 이걸 정책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외적으로 알리는 캠페인도 시작했고요.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죠.

 

_MG_2595

 

시각 장애를 넘어 독서 장애를 위한 출판은 어떤 것인가요?
묵점자 도서, 촉각도서, 점자 라벨 도서, 큰 글자 도서, 수화로 함께 보는 도서, 읽기 쉬운 도서 등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책을 읽기 어려운 여러 장애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연이어 사물의 개념을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촉각도서도 만들었고요. 어떻게 하면 나이와 상황에 맞게 더 좋은 책을 만들지, 더 좋은 문화를 접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특히 장애 아동들의 꿈이 다양하고 폭 넓어지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장애아동들을 위한 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각장애인 어른들을 위한 책에만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그럼 안 되겠다, 나는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지 싶었죠. 게다가 한 가정에는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아이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묵점자 혼용책’이에요. 눈이 보이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서로 만나는 접점이 되어준 거죠. 글자로, 점자로 함께 읽을 수 있잖아요. 남은 문제는 생산과 공급인데 출판사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비 사회적기업에 지원해 2006년부터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게 된 거예요.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으신가요?
출판사가 책을 만든 2006년부터 벌써 7년째 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이 있어요.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서 계속 빌려간 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이 됐고요. 시각장애인 동생을 위해 묵점자 혼용책을 빌려가는 아이들도 있고, 시각장애인 부모를 위해 책을 빌려가는 아이들도 있죠. 그들이 한 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시각장애인 아동들은 그렇지 않은 형제자매가 읽던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으니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고 또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거예요. 디지털로 가는 마당에 왜 굳이 아날로그로 만들어야겠냐고 남들이 그래요. 하지만 전자책은 개인화를 시킬 뿐이죠.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잖아요. 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가족이, 친구가, 사회가 함께 이야기하며 소통해야 해요. 책이 그 통로가 되어줄 수 있어요. 오프라인 책은 같이 페이지를 넘겨가며 대화할 수 있는 소재거리를 만들어주죠. 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다 읽은 책을 서로 빌려줄 수도 있고요.
 

img

 

비시각애인과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묵점자 혼용책’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신 거네요.
어디 가면 저는 반 시각장애인입니다, 라고 해요. 시각장애인은 우리와 옷을 다르게 입었을 뿐이에요. 서로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오늘 투피스를 입었는데 그 분은 바지를, 내가 빨강인데 그 분은 파랑을 입었을 뿐이니까 서로 이해해야 하는 거죠. 또 시각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어둠의 세계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시각장애인들만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내 가족, 내 이웃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물론 시각이 단절됐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이해 받길 원해서는 안돼요.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때,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는 거죠.
 

_MG_2572

 

함께 길을 간다는 것,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아가는 이유예요. 왜 프러포즈에서 “I love you” 하는 것보다 “I need you” 할 때 더 마음이 움직인다고 하잖아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일 때에 그 사랑이 더 완벽해지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일을 도울 때는, 막연하게 그분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참 좋고, 감동스러웠어요. 그러다 일을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저분들이 무엇을 해주면 기뻐하고, 저분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가 더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나 스스로 자꾸 일을 만들게 되고요. 잠깐 와서 사무보조만 하려고 했는데 스스로 일을 벌려가다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자연적으로 내가 해야 할 사명이다 생각했고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당연히 내가 가야 할 길이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 ‘계속 만들어 달라’ 얘기를 들을 때 이 일이 제가 살아가는, 귀한 사명이라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거죠.
 

 
 

Blog Footer Box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